장사라는 전쟁터에 뛰어들면서
너무 준비를 안하고 들어 왔던거다.
아무래도 나는 사장님들의 하루를, 장사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SBS 골목식당 — 백종원 대표 인터뷰 중
Break Time — “쉬는게 쉬는게 아니야”
오후 두시 반. 사장님 체험의 전반전이 끝났다. 드디어!
꼬르륵-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배 고프다고 꼬르륵 소리가 났다.
보통의 직장인은 이렇게 생각한다. 겨우 한 시간의 점심 시간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게 너무 제한적이라고. 자유로운 자영업자라면, 내가 사장이 되면, 훨씬 자유로운 선택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사장님의 식사 시간은 직장인보다 더 제한적이었다.
사장님께 ‘점심 뭐 먹을까요?’ 라고 질문은 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메뉴 선정의 기준은 ‘빨리 먹고 올 수 있는 것’이었다. 와인도깨비의 주소가 역삼동 823–4인데, 같은 번지를 쓰는 국밥집으로 갔다. 맞다. 바로 옆집이었다. 그나마 배달 음식으로 때우지 않은 건, 가게 안을 음식 냄새로 채우지 않기 위해서였다.
뜨거운 국밥은 술술 넘어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들이켰다. 식사 중간중간 찾아온 손님 때문에 여유롭게 맛을 음미할 시간은 없었다. ‘저.. 매장 앞인데요. 오늘 영업 안하시나요?’라는 전화를 받으면 바로 뛰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손님 한 명 정도는 그냥 보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한 명의 손님이라도 놓칠 수 없는 것이 바로 ‘사장님의 마음’인가보다.
점심시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껏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살아오면서 점심시간을 휴식 시간으로 누려왔었다. 근로기준법상 하루 8시간 근무할 때 1시간으로 주어지는 바로 그 휴게시간 말이다. 그런데 소상공인 자영업자 사장님들께 있어 그 시간은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이더라.
이제껏 브레이크타임은 단순히 쉬는 시간인 줄 알았다. ‘아.. 브레이크 타임이네..’하고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곤 했던 시간. 그리고 ‘아 그냥 주문 받아주면 안되나?’했던, 손님 입장에서는 왜 존재하는지 납득이 안 되는 시간.
하지만 브레이크타임은 사장님 입장에서 단순히 문을 걸어잠궈 놓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아니었다. 마치 전쟁터 한 가운데에서 우적우적 전투식량을 입에 꾸겨 넣는 정도의 느낌이랄까. 치열한 전투 속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위한 시간, 다음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재준비를 하는 시간이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기다림의 시간- “손님 없는, 텅빈 가게를 지키는 고통”
점심시간이 끝나자 매장 앞을 오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확 떨어졌다. 정말 거짓말처럼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없더라. 직장인 상권이라서 그런걸까.
손님이 없다고 멍하게 앉아 있는다면 그건 진짜 사장이 아니다. 시간만 때우는 게 목표인 불량 알바생일거다.
손님이 없어도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판매가 이뤄지지 않을 때는 판매 준비를 한다. 일단 매장 정리. 추가 입고된 와인 박스를 ‘까대기’한다. 꺼낸 와인은 오와 열을 맞춰 진열한다. 매장 전체의 선반을 돌아가며 수 백병의 와인들을 먼지털이로 조심스레 터치한다. 파운데이션 팩트를 바르듯 톡.톡.톡. 근처 와인샵을 검색하며 경쟁사 분석도 해봤다. 그러다 전화/카카오톡 등으로 들어온 고객 문의에 어떻게든 한 병이라도 더 팔 수 있을까 싶어서 성심성의를 다해 안내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가지 않았다.
나름대로 뭔가 많이 하긴 했는데. 분명히 한 일은 많은데. 평소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가, 온몸 여기저기서 근육통도 느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은 별로 흐르지 않았다. 손님이 한 명도 없었던 공백시간은 겨우 한 시간 남짓 되려나. 손님이 없는 적막한 그 시간은, 정말 길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손님이 없으면 장사 접어야 하는거 아냐?’하고 걱정마저 들었다. 하루 와서 체험하는 일일 사장의 마음이 이 정도인데. 손님 없는 가게를 지키고 계실 수 십만, 수 백만의 진짜 사장님들은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실까? 문득 식당 사장님인 삼촌의 말씀이 생각났다.
‘요즘 손님이 너무 없어서 갑가압-하다.. 장사가 참 쉬운게 아이다.
재신아 니는 장사할 생각을 함부래 하지 마래이’
역지사지라고 했던가. 역시나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봐야 그 말들이 더 와 닿고, 더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 일일 체험 덕분에 사장님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다.
손님이 뜸한 오후 시간, 청소 후의 매장 모습
Peak Time Ⅱ “연장전 시작! 연장전의 연장전… 경기는 언제 끝나나”
저녁 퇴근시간. 손님들이 다시 방문하기 시작했다.
저녁 시간대에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이런 분들이 많았다. 지인을 만나 식사할 때 드릴 선물을 산다든지, 회사 동료들과의 회식에서 마실 와인을 산다든지. 당연하다. 500여종의 와인과 앵간한 마트 와인 뺨따구를 후려칠 수 있을 정도의 가성비가 있으니! 훗- 와인도깨비는 강남역 인근에서 분명 매력 있는 와인 바틀샵 매장임에 틀림 없으리라.
저녁 시간의 차이점은 홀 손님이었다. 퇴근 길에 와인을 사 가시는 손님들도 많았지만, 홀 손님도 많았다. 와인도깨비에서는 세팅비를 내면, 매장에서 구입한 와인을 바테이블에서 즐길 수 있다. 다양한 와인을 마시기 위해 바 테이블은 손님들로 만석이었다.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흥이 났다. 손님이 넘치는 게 손님이 없는 거보다는 백배는 낫기 때문이다.
바 테이블의 손님들께 와인을 서빙해 드렸다. 치즈와 하몽 같은, 페어링해 드실 간단한 안주류도 플레이팅해 드렸다. 적당히 취기가 올라 기분이 좋아진 손님들과 대화를 하는 것도 즐거웠다.
문제는 내 본업.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을 하는 HR이 내 천성에 맞기는 한가보다. 회사의 구성원들에게 대하는 것처럼 손님들의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더니 손님들은 더더욱 신이 나서 말씀이 많아지더라. 그랬더니… 손님들이 집에 안 간다. 이제 와서 내가 든 생각은 오히려 이랬다.
‘아무래도 X됐다.’
손님들이 집에 가지 않으면 나의 근무는 끝나지 않는다. 밤 11시는 진작 지났다. 손님들은 그 자리에서 아침까지 계속 드실 기세였다. 연장전에 연장전을 거듭하는 느낌이랄까. ‘이젠 그만 쫌 가게에서 나가주셨으면..’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트 폐점시간에 들었던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그 노래를 크게 틀고 싶은 마음이었다.
참나. 몇 시간 전만 해도 ‘손님이 한 명이라도 들어왔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했었는데. 사람 마음이 이렇게 참 간사한가보다.
일일 사장님들을 위해 와인 기초교육도 진행된다. 지금의 나는 사진 속 모습에 비해 훨씬 와인을 잘 따른다.
저분들이 돌아가야 나도 사장님에서 직장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나는 벌써 12시간 넘게 일했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날 기색을 내비쳤다. 사장님과 나는 눈빛을 교환했다. BGM의 음량을 줄이고, 분위기를 잡았다. 다행히도 좀 덜 취한 손님이 다른 손님을 데리고 가게를 나가셨다.
사장님과 나는 부리나케 정리를 시작했다. 사장님은 쓰레기를 치우고 나는 설거지를 했다. 둘이 그렇게 합이 잘 맞을 수가 없다. 아주 그냥 일사천리로 정리하는데, 업무효율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진짜 사장이나 일일 사장이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인간 본성인가보다.
마감의 기본은 매출 내역을 확인하고 현금(있을 경우) 잔고를 맞추는 것. 매장 온도를 야간 상황에 맞게 맞추고, POS와 냉장고 조명을 끄고, 간판을 끄고, 경비를 걸고 나오면 된다. 내가 출근한 ‘오늘’은 어제가 된지 오래였다. 역시 월급쟁이가 좋다. 사장님은 일일 체험으로 끝내야지.
하지만 사장님 체험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사장님의 마음에 빙의해버린 내가 ‘지팔지꼰(자기 팔자 자기가 꼰다)’해 버렸기 때문인데…
(3부에서 계속)
봄 날, 벚꽃과 참 잘 어울리는 와인도깨비 강남점의 모습
* 가게 문을 닫고 나오니 택시를 잡을 수 없었다. 결국 택시를 잡는데만 1시간 정도 걸렸고, 간신히 귀가할 수 있었다.
** 이 날 이후로 일일 사장님 체험은 오후 8시에 ‘가마감’의 형태로 종료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 이렇게 일일 사장으로 살아보니 모든 사장님들이 대단해 보인다.
오늘 하루도 ‘장사’라는 전쟁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셨을 사장님들.
모든 사장님들은 대단하다. 대한민국 사장님들, 화이팅!!
장사라는 전쟁터에 뛰어들면서
너무 준비를 안하고 들어 왔던거다.
아무래도 나는 사장님들의 하루를, 장사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Break Time — “쉬는게 쉬는게 아니야”
오후 두시 반. 사장님 체험의 전반전이 끝났다. 드디어!
꼬르륵-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배 고프다고 꼬르륵 소리가 났다.
보통의 직장인은 이렇게 생각한다. 겨우 한 시간의 점심 시간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게 너무 제한적이라고. 자유로운 자영업자라면, 내가 사장이 되면, 훨씬 자유로운 선택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사장님의 식사 시간은 직장인보다 더 제한적이었다.
사장님께 ‘점심 뭐 먹을까요?’ 라고 질문은 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메뉴 선정의 기준은 ‘빨리 먹고 올 수 있는 것’이었다. 와인도깨비의 주소가 역삼동 823–4인데, 같은 번지를 쓰는 국밥집으로 갔다. 맞다. 바로 옆집이었다. 그나마 배달 음식으로 때우지 않은 건, 가게 안을 음식 냄새로 채우지 않기 위해서였다.
뜨거운 국밥은 술술 넘어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들이켰다. 식사 중간중간 찾아온 손님 때문에 여유롭게 맛을 음미할 시간은 없었다. ‘저.. 매장 앞인데요. 오늘 영업 안하시나요?’라는 전화를 받으면 바로 뛰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손님 한 명 정도는 그냥 보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한 명의 손님이라도 놓칠 수 없는 것이 바로 ‘사장님의 마음’인가보다.
점심시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껏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살아오면서 점심시간을 휴식 시간으로 누려왔었다. 근로기준법상 하루 8시간 근무할 때 1시간으로 주어지는 바로 그 휴게시간 말이다. 그런데 소상공인 자영업자 사장님들께 있어 그 시간은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이더라.
이제껏 브레이크타임은 단순히 쉬는 시간인 줄 알았다. ‘아.. 브레이크 타임이네..’하고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곤 했던 시간. 그리고 ‘아 그냥 주문 받아주면 안되나?’했던, 손님 입장에서는 왜 존재하는지 납득이 안 되는 시간.
하지만 브레이크타임은 사장님 입장에서 단순히 문을 걸어잠궈 놓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아니었다. 마치 전쟁터 한 가운데에서 우적우적 전투식량을 입에 꾸겨 넣는 정도의 느낌이랄까. 치열한 전투 속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위한 시간, 다음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재준비를 하는 시간이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기다림의 시간- “손님 없는, 텅빈 가게를 지키는 고통”
점심시간이 끝나자 매장 앞을 오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확 떨어졌다. 정말 거짓말처럼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없더라. 직장인 상권이라서 그런걸까.
손님이 없다고 멍하게 앉아 있는다면 그건 진짜 사장이 아니다. 시간만 때우는 게 목표인 불량 알바생일거다.
손님이 없어도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판매가 이뤄지지 않을 때는 판매 준비를 한다. 일단 매장 정리. 추가 입고된 와인 박스를 ‘까대기’한다. 꺼낸 와인은 오와 열을 맞춰 진열한다. 매장 전체의 선반을 돌아가며 수 백병의 와인들을 먼지털이로 조심스레 터치한다. 파운데이션 팩트를 바르듯 톡.톡.톡. 근처 와인샵을 검색하며 경쟁사 분석도 해봤다. 그러다 전화/카카오톡 등으로 들어온 고객 문의에 어떻게든 한 병이라도 더 팔 수 있을까 싶어서 성심성의를 다해 안내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가지 않았다.
나름대로 뭔가 많이 하긴 했는데. 분명히 한 일은 많은데. 평소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가, 온몸 여기저기서 근육통도 느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은 별로 흐르지 않았다. 손님이 한 명도 없었던 공백시간은 겨우 한 시간 남짓 되려나. 손님이 없는 적막한 그 시간은, 정말 길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손님이 없으면 장사 접어야 하는거 아냐?’하고 걱정마저 들었다. 하루 와서 체험하는 일일 사장의 마음이 이 정도인데. 손님 없는 가게를 지키고 계실 수 십만, 수 백만의 진짜 사장님들은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실까? 문득 식당 사장님인 삼촌의 말씀이 생각났다.
‘요즘 손님이 너무 없어서 갑가압-하다.. 장사가 참 쉬운게 아이다.
재신아 니는 장사할 생각을 함부래 하지 마래이’
역지사지라고 했던가. 역시나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봐야 그 말들이 더 와 닿고, 더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 일일 체험 덕분에 사장님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다.
Peak Time Ⅱ “연장전 시작! 연장전의 연장전… 경기는 언제 끝나나”
저녁 퇴근시간. 손님들이 다시 방문하기 시작했다.
저녁 시간대에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이런 분들이 많았다. 지인을 만나 식사할 때 드릴 선물을 산다든지, 회사 동료들과의 회식에서 마실 와인을 산다든지. 당연하다. 500여종의 와인과 앵간한 마트 와인 뺨따구를 후려칠 수 있을 정도의 가성비가 있으니! 훗- 와인도깨비는 강남역 인근에서 분명 매력 있는 와인 바틀샵 매장임에 틀림 없으리라.
저녁 시간의 차이점은 홀 손님이었다. 퇴근 길에 와인을 사 가시는 손님들도 많았지만, 홀 손님도 많았다. 와인도깨비에서는 세팅비를 내면, 매장에서 구입한 와인을 바테이블에서 즐길 수 있다. 다양한 와인을 마시기 위해 바 테이블은 손님들로 만석이었다.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흥이 났다. 손님이 넘치는 게 손님이 없는 거보다는 백배는 낫기 때문이다.
바 테이블의 손님들께 와인을 서빙해 드렸다. 치즈와 하몽 같은, 페어링해 드실 간단한 안주류도 플레이팅해 드렸다. 적당히 취기가 올라 기분이 좋아진 손님들과 대화를 하는 것도 즐거웠다.
문제는 내 본업.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을 하는 HR이 내 천성에 맞기는 한가보다. 회사의 구성원들에게 대하는 것처럼 손님들의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더니 손님들은 더더욱 신이 나서 말씀이 많아지더라. 그랬더니… 손님들이 집에 안 간다. 이제 와서 내가 든 생각은 오히려 이랬다.
‘아무래도 X됐다.’
손님들이 집에 가지 않으면 나의 근무는 끝나지 않는다. 밤 11시는 진작 지났다. 손님들은 그 자리에서 아침까지 계속 드실 기세였다. 연장전에 연장전을 거듭하는 느낌이랄까. ‘이젠 그만 쫌 가게에서 나가주셨으면..’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트 폐점시간에 들었던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그 노래를 크게 틀고 싶은 마음이었다.
참나. 몇 시간 전만 해도 ‘손님이 한 명이라도 들어왔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했었는데. 사람 마음이 이렇게 참 간사한가보다.
저분들이 돌아가야 나도 사장님에서 직장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나는 벌써 12시간 넘게 일했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날 기색을 내비쳤다. 사장님과 나는 눈빛을 교환했다. BGM의 음량을 줄이고, 분위기를 잡았다. 다행히도 좀 덜 취한 손님이 다른 손님을 데리고 가게를 나가셨다.
사장님과 나는 부리나케 정리를 시작했다. 사장님은 쓰레기를 치우고 나는 설거지를 했다. 둘이 그렇게 합이 잘 맞을 수가 없다. 아주 그냥 일사천리로 정리하는데, 업무효율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진짜 사장이나 일일 사장이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인간 본성인가보다.
마감의 기본은 매출 내역을 확인하고 현금(있을 경우) 잔고를 맞추는 것. 매장 온도를 야간 상황에 맞게 맞추고, POS와 냉장고 조명을 끄고, 간판을 끄고, 경비를 걸고 나오면 된다. 내가 출근한 ‘오늘’은 어제가 된지 오래였다. 역시 월급쟁이가 좋다. 사장님은 일일 체험으로 끝내야지.
하지만 사장님 체험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사장님의 마음에 빙의해버린 내가 ‘지팔지꼰(자기 팔자 자기가 꼰다)’해 버렸기 때문인데…
(3부에서 계속)
* 가게 문을 닫고 나오니 택시를 잡을 수 없었다. 결국 택시를 잡는데만 1시간 정도 걸렸고, 간신히 귀가할 수 있었다.
** 이 날 이후로 일일 사장님 체험은 오후 8시에 ‘가마감’의 형태로 종료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 이렇게 일일 사장으로 살아보니 모든 사장님들이 대단해 보인다.
오늘 하루도 ‘장사’라는 전쟁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셨을 사장님들.
모든 사장님들은 대단하다. 대한민국 사장님들, 화이팅!!